요!

The Gwiae Traditional House

인사말
귀애고택을 찾아주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귀애고택은 영천시에서 최초로 관광편의시설업(한옥체험)으로 지정증을 교부받은 고택으로
문헌공 조명직(曺命稷)[1733~1807]이 1767년(영조 43년)에 이곳으로 이주하여 건립하였으며
조선 후기 학자이며 사간원 사간, 사헌부 집의, 돈령부 도정, 공조 참의를 지낸 귀애 조극성(1803 - 1877)을 추모하기 위하여
정자와 사당을 1877년(고종 14년)에 건립하였다

고택 및 정자를 거니노라면 시간이 멈춘듯 조선시대의 채취가 느껴지는 듯 합니다.
고택의 대문을 활짝 열고 여러분과 추억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에서 인연이 되실 분을 기다리겠습니다.
정성을 다해 여러분을 맞이 하겠습니다.

귀애고택 소개
귀애고택(龜厓古宅) 안내문

귀애고택은 귀애공(龜厓公)의 증조부인 묵헌공(默軒公) 조명직(曺命稷)이 조선 영조 43년(1767년) 화남면 귀호리인 이곳으로 이주하여 세거지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 후 귀애공, 운파공, 일산공 3대에 걸쳐 완성하였는데 이 집의 전체 규모는 귀애정과 사당, 별묘, 육각정을 포함 47 칸의 큰 집이었다. 불행하게도 별묘는 50여 년 전에 도괴 되고 1988년 전기 누전에 의한 화재로 사랑채, 아랫사랑채등 15칸이 소실되고 1991년에 사랑 채를 복원하였다.
이 집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안산인 보현산 정상(頂上)이 오묘하게 보이고 집터가 소쿠리 모양이라 집을 건립 후 3대 이후에는 자손이 대과에 급제하고 재물이 늘어난다고 했는데 참으로 묵헌공의 증손 형제인 귀애공, 성재공이 대과에 급제하여 국사에 참여하였고 5대손 일산공(一山公) 때는 세인(世人)들이 삼천석(三千石) 집이라 했는데 이는 학문(學問)이 천석이요. 재물(財物)이 천석이요. 이웃에 적선(積善)함이 천석이었다는 뜻으로 지금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1945년 광복된 후 혼란기에 좌익 폭도들이 관공서, 양반지주집을 불사르고 인명을 살상 할 때도 귀애공 참의댁은 이웃에 적선을 많이 했다면서 귀애고택을 불사르지 않아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를 지닌 귀애고택에는 문화재인 귀애정(龜涯亭)과 사당, 연못 속에 육각정이 있어 주변의 자연과 잘 어우러져 그 풍광(風光)이 또 한 매우 아름답다.

家 訓

너희들은 항상 큰 뜻을 품고 새로운 것을 찾아 깨우치고 實踐할 것이며 어버이에게는 至誠으로 孝道하고 나라에는 愛國하고 집안에는 和睦하여야 한다. 祖上의 遺産을 줄이지 말고 擴大再生産하고 養子女保家成하라.
사람이 바르지 않으면 사귀지 말것이며 그 물건이 의롭지 아니하거든 취하지 말아서 自身과 父母와 祖上을 빛나게 하라.

통정대부공조참의불천위귀애공행적조명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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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애 조극승

귀애 조극승(曺克承)은 본관이 창녕(昌寧)이고 자는 경휴(景休)로 순조 3년(1803) 지금의 경북 영천시 화남면 귀호리에서 태어났다.

창녕조씨의 영천지역 입향(入鄕) 및 세거(世居)과정을 살펴보면 조선 태조때 조신충(曺信忠)이 처음으로 지금의 금호읍 창수마을(현삼 호리) 에 정착하였으며,
영조때 조명직(曺命稷)이 화남면 귀호리로 이주하여 세거지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조극승은 부(父) 경섭과 모(母) 달성서씨 사이의 4형제(克承, 右承, 逵承, 善承)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병조참판을 역임한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의 문인으로 순조 31년(1883) 4월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좌랑, 종부시부주, 사헌부감찰을 역임하고,
1845년에는 성균관 전적을, 1849년에는 사간원정언으로,
사간원사간(종3품)으로 문신선전관을 겸직하였다.
그후 철종대에서도 언관(言官)으로서 사헌부집의(종 3품)로 조정의 감찰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신임을 받았었고
그 뒤 돈령부 도정(정3품)을 역임하시다 낙향하여 고향에 은거하면서 유풍을 진작시켰다.
그 공로가 인정되어 공조참의(정3품)에 제수되었다.

그의 아우 성재(省齋) 규승(逵承) 또한 고종 4년(1867) 문과에 급제하여 형제가 함께 영예를 누렸다.
두 사람 모두 말년에는 지역에서 후진양성과 학문 연마에 정열을 쏟아‘귀애집’,‘성재집’등을 남겼다.

고종 14년(1877) 형 극승(克承)이 돌아가시자 그를 추앙하기 위하여 귀애정과 사당을 건립하였으며 지금까지도 조씨 문중과 지역민이 두 형제의 학덕과 사상을 흠모하고 또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약도
38810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귀호1길 37-17

37-17, Gwiho 1-gil, Hwanam-myeon, Yeongcheon-si, Gyeongsangbuk-do, Republic of Korea
054-331-8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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